-도담 사랑방-/향기 묻어나는 글

아름다움에는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운산제 2009. 3. 31. 08:26

 

 

 남쪽에 내려가 쉬면서 한 암자의 뜰에 있는 연못에서

나는 아름다움이 뭐라는 걸 새삼스레 인식하게 되었다. 연못

이래야 겨우 손바닥만 한 크기, 세로 두어 자, 가로 너댓 자

될까 말까 한 작은 규모이다. 넘치는 샘물에 청죽(靑竹)으로

흠대를 만들어 연못으로 끌어들인 구조인데 거기 수련과

창포와 바위와 이끼와 올챙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것도 연못에

가득 차지 않고 3분의 1쯤 남은 빈 자리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작은 연못은 아름다움의 한 요소인 '여백의 미' 를 지니고

있었다. 덜 채워져 좀 모자란 듯한 구석, 그립고 아쉬움이 따르는

그런 운치를 지닌 사랑스런 연못이었다. 흠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적막한 산중의 분위기를 한층 적막하게 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그 연못가에 앉아 저 미륵반가사유상이

지닌 고요와 평안과 잔잔한 미소를 머금곤 했었다. 연못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정한 노송이 서너 구루 있는데 앞산에 달이 떠 가지에

걸릴 때 연못에 비출 그 황홀한 아름다움은 상상만으로 족했다.

 

 또 아름다움에는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이런 시가 있다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일지 않고

 

달이 연못 속에 들어가도 물에는 흔적 없네“

 

바람에 일렁이는 대와 뜰과 달과 연못이 한데 어울리면

서로 서로 거리낌이 없는 이런 경지가 아름다움이 지닌

오묘한 조화이다. 뛰어난 장인(匠人)은 그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그 무엇에도 거리낌이 없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샘물과 같아서 퍼내어도 퍼내어도 다 함이 없이

안에서 솟아난다. 그러나 가꾸지 않으면 솟지 않는다. 어떤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열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안으로 느낄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나 자진이 지닌 아름다움은 가꾸지 않으면 솟아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 이웃과 고락을 함께하면서 즉 이웃과

나누는 일을 통해서 나 자신을 시시로 가꾸어야 한다. 인정의 샘이 넘

처야 나 자신의 삶이 그만큼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가리켜

시들지 않는 영원한 기쁨이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