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암 없이 100세 살기-/암 치료사례및 투병기

암 환자 투병 수기...임파선 암

운산제 2008. 11. 30. 14:27

김ㅇㅇ님 민속한의원 치료 수기

서   론

인간은 보통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은 나에게만은 아프지도 죽지도 않을 걸로 생각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생로병사의 과정을 벗어 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온 인류 속에서 나 혼자만이 아프고 고통을 겪는 걸로 착각하고 행동을 하는 것 같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서 아프거나 늙어서 이 세상을 떠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하고 암이라는 크나 큰 장벽에 갇혀 절망 속에서 투병하는 환우에게 조그마한 희망의 불빛을  주고 마음의 안식을 주고자 다음과 같은 순서로 쓰고자 합니다. 

  1.병 발병과 증상

  2.병원 치료과정

  3.한방치료와 운동요법

  4.맺은 말


본   론

1.병 발병과 증상

1995년 셋째를 출산하고 몸 관리를 못하여 몸무게가 70Kg대까지 나가는 비만이 되었는데  2000년도에는 몸에 이상 징후가 발생하였다. 집에서 아기 셋을 끼우는 전업 주부인데도 불구하고 매일 피곤하여 누워서 지냈으며, 만사가 귀찮았고 다리에 붉은 반점이 생겨 익산에 있는 ○○병원 피부과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 홍반점이라 병명으로 진단되었으며 약을 복용 하였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2001년 봄 부안에 있는 산부인과 의원에서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암 같으니 큰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 보라는 권고를 받았다.

 이 시기가 2001년 의,약 분업이 처음 시작되면서 병원파업으로 환자들이 진료받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로 힘들었다. 아는 사람을 통하여 ○○병원에 어렵게 진료가 예약되어 처음에는 산부인과, 외과, 내과 순으로 진료를 하다 보니 2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내과에서는 유육종으로  일본에서는 유육종 환자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호르몬치료를 받으면 완치가 가능하다는 말과 내가 암이 맞느냐고 물었더니 암은 아니다 라는 말에 위안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병원 치료과정

대학병원에서 진단 후에도 몸이 붓고 피곤하여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았으며

1주일 씩 5회를 입원하다보니 처음에는 입원하면 좋아졌으며 나는 내 희망

섞인 바람대로 의사말만 딱 믿었다. 나중에는 약을 먹어도 효과도 없었으며,

고열과 소변 색깔이 피 같이 붉게 되었으며, 해열제 먹어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이러다 사람 잡겠다는 생각에 서울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 입원 진료를 받았다. 진료과정에 대학병원 진료내역을 이야기했으며, 의사들은 해열제를 주사하여도 고열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2주 후 결과는 청천병력 같은 진단의 결과가 나왔다. 병명은 호지킨스(임파선 암)로 항암제 투여를 결정하라는 주문이었고, 생사의 기로에서 항암제 투여를 승낙했으며, 항암제 투여 시 의사의 답변은 항암제를 투여 후 2주일이 지나야 생사를 논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항암제가 듣지 않으면 생명을 장담할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 해 8월부터 3주 간격으로 시작된 항암제 투여는 사람을 하루아침에 변하게 만들었다. 온 몸이 까맣게 피부가 타 들어가고 물 한 모금 넘기기 힘들고 구토와 머리 빠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작이었다.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여 병원에 있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삭발하였는데 아내의 이야기가 내 머리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울먹였다. 내가 달래기를 머리를 깎으면 다시 나니 걱정 말고 희망을 가지라고 격려를 하였지만 내 마음은 이미 숯덩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러기를 2002년 5월까지 8회에 걸쳐 항암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이야기하여도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침 8시 진료를 위하여 부안에서 새벽4부터 출발하여 항암제를 투여하고 집에 오면 오후6시 나와 집사람은 초죽음 상태가 되기를 여러 번이었다. 한번은 항암제를 투여 받고 골수검사로 맥이 축 늘어진 상태인데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부근에서 자동차가 멈춰 버려 군산에 있는 동생을 불러 동생차를 이용하여 귀가 하는데 동군산IC에 도착하여 통행료를 계산하려 했으나 표가 없어져 고속도로 영업소에 들러 자초지종 이야기를 하고 통 사정 하였으며, 청하에서는 신호위반이라고 경찰에 걸려 환자가 있어 당황하여 위반하였다고 자초지종 이야기하며 통사정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오후9시를 넘겼다. 

  2002년 5월에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암 세포가 보이지 않는다고 정말 듣고 싶은 결과를 이야기 하였다. 정말 천하를 얻은 것 같이 기쁘고 반가웠다.

암에 대한 두려움이 가시기도 하였으며, 항암제로 암이 치료되는구나

하고

너무 쉽게 생각해 버렸다. 그 생각도 잠시 8월에 귀 부분과 목 주변에 좁쌀 같은 것이 생겨 걱정을 하고 다시 조직검사와 CT 검사를 하니 재발이라는 정말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시 항암제를 투여 하여야하는데 이제는 입원을 하여 항암제를 맞아야 한다고 그리고 기존항암제 보다 5배 강도가 높게 항암제를 투여하여 골수를 채취고 10배 높은 항암제를 투여하여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여야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말을 듣고 모르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할 수없이 자가 조혈모세포이식 과정을 시작하여 1차에 골수 일부를 채취하고 2차에 골수 채취를 하다가 면역기능 상실로 합병증이 발병하여 2개월이 넘게 입원을 하였는데 5월에 어느 날 갑자기 중환자실로 옮긴다는 연락을 받고 부안에서 서울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니 이미 중환자실로 옮긴 후였다.

 매일 혈소판 수혈과 진균성 폐렴에 효과가 있는 항생제를 투여하고 중환자실 면회는 하루에 3번 제한되었으며, 중환자실 환자는 그야말로 중환자로 거의 다 시신으로 나오는 것이 현실이었다.

  12일의 중환자실 입원을 하고 일반 병실로 나왔는데도 하루걸러 혈소판수혈과 매일 소화제를 먹어야 먹은 것을 소화시키니  정말 답답했다. 마음속으로 1주일만 더 상태를 살펴보다가 좋아지지 않으면 퇴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죽어도 집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이 임종을 볼 수하자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원이나 없게 전에부터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민속한의원에 가서 치료 한번 받게 하자고 혼자 다짐하였다. 1주일이 경과하여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전과 같아 굳은 마음먹고 퇴원을 하였다. 병원 의사는 처음에는 말렸으나 승낙하였으며 소견서와 함께 앰블런스와 함께 부안의 병원으로 퇴원하였다. 부안의 병원에 도착하니 암환자라는 말 한마디에 링거 한 병 놓는데도 무서워하였으며 간호사가 혈관을 찾지 못하여 주사를 놓지 못하고 다음날 ○○병원으로 입원하라고 소견서를 써 주었다. ○○병원 응급실로 갔더니 2일 동안 응급실에서 치료할 뿐 입원을 거절하였다. 할 수 이 병원 저 병원을 찾다가 ○○병원에 갔더니 입원을 흔쾌히 받아 주었다. ○○병원의 오진과 거듭된 입원으로 돈들이고 병을 키워서 사람을 죽음직적까지 가게한 병원에 대한 원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병원에 입원 시에도 소화제로 소화를 시키는 실정이었으며,  나마도 3주후에는 퇴원하라는 명령이 떨어져 바로 민속한의원을 찾았다.     

3.한방자연치료와 운동요법

 민속한의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시작하여 뜸을 뜨고 한방약과 항암차,마늘   죽염을 먹었는데 체력이 약하여 뜸도 많이 뜨지 못하고 식사도 보호자가 들어다 주었으나 많이 먹지 못하였다. 3일쯤 지나니 소변에 감각이 살아나고 소화가 조금씩 되기 시작하였으며 10일간 입원 후 퇴원하였다. 퇴원을 하게 된 것은 보호자 없이 혼자 입원할 수가 없어서 잠시 집으로 퇴원하였다.

 퇴원 후 집에서도 약과 뜸을 계속하였으며 죽염과 마늘을 먹기 시작하였으며 어린이가 첫발을 내딛는 것 같은 심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음마로 시작하고 하루 밤에도 화장실을 가기 위하여 4번 내지 5번을 일어나 용변을 해결하였으며 악착같이 쑥뜸을 뜨기 시작하였다.

 다시 입원하여 10일 한의원에서 한방약으로 치료를 하면서 뜸, 침, 마늘,

죽염, 항암약차, 식이요법으로 생활화하여 퇴원하였다. 퇴원 후 방에서 쑥뜸을 뜨다보니 온방에 냄새로 찌들어 별수 없이 뜸뜨는 방을 만들었으며, 하루 일과로  쑥뜸을 어김없이 두 번을 뜨고 운동을 하였고, 죽염을 묻혀 마늘과 홍삼을 상식하면서 식이요법을 열심히 하였다.

 운동의 한 일화로 2002년 전 ○○병원 ○○원장의 암 투병기가 신문과 방송으로 나와 화제가 되었는데 움직일 수만 있으면 한 걸음부터 힘닿는데 까지 운동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몸을 부축하면서 운동을 하였는데 내가 아는 분이 내가 집사람을 부축하고 운동을 하니 어머니가 아프냐고 걱정 어린 말투로 묻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10미터 내일은 11미터 이런 식으로 운동량을 늘리고 집에서, 다음에는 공원으로 다음에는 낮은 산으로 다음에는 더 높은 산으로 매 주말에는  부축하면서 등산을 시작하였다. 등산을 통한 운동을 시작하니 근육이 살아나고 소화가 잘되고 면역력이 높아지는 것 같았다.

 한방 치료를 하면서 병원치료는 아예 끊었으며 감기가 앓아도 한방으로 치료하였으며, 항상 민속한의원 한의사님과 상의하여 처방받아 치료하였다. 한약과 쑥뜸, 마늘과 죽염은 2002년 5월부터 2007년 5월까지 치료약을 복용하였으며 지금까지도 쑥뜸과 마늘, 죽염, 홍삼은 계속복용하고 있으며 운동은 쉬지 않고 시간만 있으면 등산과 걷기운동을 하고 있다.

 혼자서 서지도 못한 몸을 2006년에는 1620미터의 향적봉 및 계룡산, 내장산 등 전라북도 주요 산을 등반하였는데 처음 걸음마 연습을 할 때 누가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2006년 가을에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 보니 많이

좋아졌다는 의사선생님의 소견을 들었다. 돌이켜 보건대 절망 속에서 새 삶을 얻었다는 것이 정말 꿈만 같고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4.맺은 말

 병원에 입원하고 항암제를 맞을 때도 항상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이 투병생활에 얼마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체험하였다. 내가 집사람이 병원에 입원 하였을 때 병원 예배 실에서 집사람과 함께 예배를 보면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오늘 집사람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데 감사드린다고, 그리고 눈물로 호소하면서 어린 자식과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하여 살려달라고 기도하기를 수없이 하였으며, 항상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였으며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살도록 하자고 하였으며, 한 “예”로 아산병원에서 2인실에 입원한 일이 있었는데 입원환자가 00씨는 어떻게 즐겁게 사는 지 정말 부럽다고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만 생각하였는데 00씨로부터 희망을 읽었다면서 우리  언니 동생하자고 하였으며 지금까지   연락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항상 하고자한다면 방법을 찾는다고 하였듯이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노력한다면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도 참아내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혼자서 투병하려고 마음먹지 말고 가족 모두 함께한다면 투병하는데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생각만 하지 말고 지금부터 하나하나 실천한다면 희망이 보일 것입니다.

부안에서...

김00 암 투병기